시드(초기) 투자 이후에 진행되는 시리즈A 투자는 사업 모델이 시장에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는 가늠자다. 사업 모델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진 가운데 투자 혹한기가 끝을 향해 가면서 큰 기업부터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투자 분야별로 살펴보면 SaaS 대신 제조업의 부상이 확연하다. 반도체 분야 투자 비중이 13.9%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이어 환경·에너지, 반려동물, 패션 분야가 ‘톱5’에 오르며 1년 전의 음식, 콘텐츠, 엔터프라이즈 분야를 대신했다. 바이오·의료 분야는 1위에서 2위로 내려왔지만, 투자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모바일 및 전장용 연성회로기판(FPCB) 제조사인 유트로닉스와 5세대(5G) 통신용 초고속 커넥터 제조사인 위드웨이브도 각각 200억원, 100억원 조달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구동 소프트웨어 개발사 모레는 KT와 KT클라우드로부터 150억원을 투자받았다.
환경 분야 제조업체에도 뭉칫돈이 몰렸다. 가스 누설 감지용 초음파 음향 카메라를 개발·생산하는 에스엠인스트루먼트가 260억원을 조달했다. 폐기물 자동 선별 로봇 솔루션 업체 에이트테크(86억원), 산업용 폐수처리 설비 제조업체 삼정개발(50억원), 오염물 청소 로봇 스타트업 리셋컴퍼니(40억원) 등도 줄줄이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전고체 전지용 고체 전해질을 개발하는 신생 기업 나노캠프(200억원)와 엔플로우(70억원)도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 밖에 화학기상증착법(CVD)을 이용해 그래핀을 생산하는 그래핀스퀘어(190억원)와 산업용 기계 로봇 제조업체 고성엔지니어링(150억원) 등도 딥테크 제조업체로서 시리즈A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바이오·의료 분야에선 영장류 비임상 CRO(임상시험수탁기관) 인증 사업을 하는 키프라임리서치(250억원), AI 기반 신약 개발사 노보렉스(115억원), 4세대 면역항암제 업체 셀레메디(100억원) 등이 100억원 이상의 뭉칫돈을 모았다.
해외 투자자들은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했다. 미국 벤처캐피털(VC) 그리핀게이밍파트너스는 PC용 액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개발사 블랙스톰에 150억원을 넣었고, 일본 장난감회사 반다이는 웹툰·애니메이션 제작사 와이랩스튜디오에 137억원을 투자했다.
피프티피프티 소속사 어트랙트는 싱가포르 투자회사 에버그린으로부터 100억원을 유치했다. 트리플에스 소속사 모드하우스의 104억원 투자라운드에는 글로벌브레인(일본), 리플렉시브캐피털(미국). 스페르미온(미국), 포사이트벤처스(싱가포르) 등 해외 VC가 참여했다.
지난해 상반기 10건의 시리즈A 투자를 집행하며 KB인베스트먼트와 공동 1위에 오른 산업은행은 투자 건수가 반으로 줄었다. IMM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신한캐피탈은 지난해 하반기 5건의 시리즈A 투자를 했다.
일반 기업의 스타트업 초기 투자는 확 줄었다. 작년 하반기 32개 대·중소기업이 스타트업 30곳의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1년 전 67개 대·중소기업이 스타트업 61곳에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