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에 몰렸던 관심 'AI 반도체'로…스타트업 지형도 확 바뀌었다 [긱스]

입력 2024-01-03 18:03   수정 2024-01-11 16:38

1년6개월이 넘는 벤처투자 혹한기를 거치며 스타트업 등 비상장사 지형도가 확연하게 바뀌었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대신 반도체 등 제조업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시리즈A 단계 투자 유치액과 투자를 받은 기업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기업당 평균 조달액은 증가하며 ‘회복 신호’를 보였다.

기업당 투자 조달액 늘어
3일 스타트업 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107개 중소기업·스타트업이 시리즈A 단계에서 8574억원을 조달했다. 투자 한파가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2022년 하반기 1조4052억원(171개사), 지난해 상반기 8949억원(121개사)과 비교하면 투자 유치액과 투자를 받은 기업 수는 줄었다. 다만 기업당 조달액은 8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74억원보다 늘었다.

시드(초기) 투자 이후에 진행되는 시리즈A 투자는 사업 모델이 시장에서 작동하는지를 판단하는 가늠자다. 사업 모델의 수익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진 가운데 투자 혹한기가 끝을 향해 가면서 큰 기업부터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투자 분야별로 살펴보면 SaaS 대신 제조업의 부상이 확연하다. 반도체 분야 투자 비중이 13.9%로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하며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이어 환경·에너지, 반려동물, 패션 분야가 ‘톱5’에 오르며 1년 전의 음식, 콘텐츠, 엔터프라이즈 분야를 대신했다. 바이오·의료 분야는 1위에서 2위로 내려왔지만, 투자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반도체 등 딥테크에 ‘뭉칫돈’
스타트업 가운데 시리즈A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곳은 5500만달러(약 740억원)를 조달한 데이터처리 가속기(DPU) 시스템 반도체 설계사인 망고부스트다. 김장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2022년 3월 설립한 회사로, 국내에선 독보적으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서버의 과부하를 줄이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시리즈A 투자 유치를 통해 기업가치를 3억500만달러(약 4000억원)로 평가받았다. 가치가 1년여 만에 여섯 배 넘게 뛰었다.

모바일 및 전장용 연성회로기판(FPCB) 제조사인 유트로닉스와 5세대(5G) 통신용 초고속 커넥터 제조사인 위드웨이브도 각각 200억원, 100억원 조달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구동 소프트웨어 개발사 모레는 KT와 KT클라우드로부터 150억원을 투자받았다.

환경 분야 제조업체에도 뭉칫돈이 몰렸다. 가스 누설 감지용 초음파 음향 카메라를 개발·생산하는 에스엠인스트루먼트가 260억원을 조달했다. 폐기물 자동 선별 로봇 솔루션 업체 에이트테크(86억원), 산업용 폐수처리 설비 제조업체 삼정개발(50억원), 오염물 청소 로봇 스타트업 리셋컴퍼니(40억원) 등도 줄줄이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전고체 전지용 고체 전해질을 개발하는 신생 기업 나노캠프(200억원)와 엔플로우(70억원)도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이 밖에 화학기상증착법(CVD)을 이용해 그래핀을 생산하는 그래핀스퀘어(190억원)와 산업용 기계 로봇 제조업체 고성엔지니어링(150억원) 등도 딥테크 제조업체로서 시리즈A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패션·바이오 스타트업도 부상
패션 및 반려동물 분야는 눈에 띄게 투자가 늘어났다. 탄탄한 브랜드를 갖춘 기업에 뭉칫돈이 몰렸다. ‘마르디 메크르디’ 등 프렌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피스피스스튜디오는 500억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신발 브랜드를 운영하는 크리스틴컴퍼니는 70억원을 조달했다. 반려동물용품 브랜드 ‘페스룸’을 운영하는 비엠스마일은 SK네트웍스로부터 28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받았다. 반려견 대상 항암제 약물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프리메드의 300억원 규모 투자 라운드에는 SK텔레콤, 성홍, 벽산 등이 참여했다.

바이오·의료 분야에선 영장류 비임상 CRO(임상시험수탁기관) 인증 사업을 하는 키프라임리서치(250억원), AI 기반 신약 개발사 노보렉스(115억원), 4세대 면역항암제 업체 셀레메디(100억원) 등이 100억원 이상의 뭉칫돈을 모았다.

해외 투자자들은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초기 스타트업에 집중했다. 미국 벤처캐피털(VC) 그리핀게이밍파트너스는 PC용 액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개발사 블랙스톰에 150억원을 넣었고, 일본 장난감회사 반다이는 웹툰·애니메이션 제작사 와이랩스튜디오에 137억원을 투자했다.

피프티피프티 소속사 어트랙트는 싱가포르 투자회사 에버그린으로부터 100억원을 유치했다. 트리플에스 소속사 모드하우스의 104억원 투자라운드에는 글로벌브레인(일본), 리플렉시브캐피털(미국). 스페르미온(미국), 포사이트벤처스(싱가포르) 등 해외 VC가 참여했다.
최다 투자는 KB인베스트먼트·기업은행
지난해 하반기 시리즈A 투자를 가장 많이 한 투자사로는 KB인베스먼트와 기업은행이 꼽혔다. 공동 1위로 각각 8개 회사에 투자했다. 하나벤처스는 7건의 시리즈A 투자를 집행하며 3위에 올랐다. 한국투자파트너스와 신용보증기금은 각각 6건의 투자를 하며 공동 4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상반기 10건의 시리즈A 투자를 집행하며 KB인베스트먼트와 공동 1위에 오른 산업은행은 투자 건수가 반으로 줄었다. IMM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신한캐피탈은 지난해 하반기 5건의 시리즈A 투자를 했다.

일반 기업의 스타트업 초기 투자는 확 줄었다. 작년 하반기 32개 대·중소기업이 스타트업 30곳의 시리즈A 투자에 참여했다. 1년 전 67개 대·중소기업이 스타트업 61곳에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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